신도 가네토(新藤 兼人)는 1912년 4월 22일 히로시마현 히로시마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유년 시절을 비교적 가난한 환경에서 보냈으며, 당시 일본 사회의 계급 구조와 차별적 현실을 피부로 느끼며 자랐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그는 일찍부터 예술과 문학에 관심을 보였고, 도쿄로 상경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영화에 대한 열망을 안고 영화사 쇼치쿠에 취업하게 된다. 하지만 처음에는 잡역부로 시작해 필름 나르기나 소도구 정리 같은 허드렛일부터 시작했으며, 여러 해를 거치며 현장 경험을 쌓아나갔다. 이 시기 그는 후에 일본 영화사의 전설로 남게 될 감독들과 교류를 시작했으며, 특히 가네토 시게키, 이마이 타다시, 오즈 야스지로 같은 거장들로부터 간접적 영향을 받았다. 이후 그는 조감독으로서 영화 제작 전반에 관여하게 되었고, 영화의 구성, 시나리오, 연출에 대한 이해도를 점점 넓혀나갔다. 신도의 유년기와 젊은 시절의 경험은 이후 그의 작품 세계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었고, 특히 전쟁, 피지배 계층, 여성 문제,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비판적 시선은 그의 성장 배경에서 비롯된 강한 현실 인식과 윤리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신도 가네토는 1951년 자전적 요소가 담긴 『사랑하는 사람들』로 감독 데뷔를 하였고, 이후 60여 편 이상의 장편영화를 연출하며 일본 영화사의 산증인이자 지성으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베어도 벌거숭이도 없다』(1960)는 계급사회 속 여성의 생존과 모성, 인간의 욕망을 고발하는 수작으로 당시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1964년작 『벌거벗은 섬』은 대사 없이 영상만으로 극한의 인간 조건과 자연과의 투쟁을 묘사한 걸작으로 평가받았으며, 베니스 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 외에도 『죽음의 기록』(1981), 『아나타헤노레퀴엠』(1992), 『나가사키의 종』(1999) 등 원폭 피해자와 전쟁 희생자들의 삶을 다룬 작품들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신도는 일본 전후 영화의 윤리적, 사회적 방향을 제시한 인물로, 직접 각본을 집필하며 연출과 작가주의를 동시에 실현한 드문 감독이었다. 그는 신도 프로덕션이라는 독립 제작사를 설립해 상업성과 타협하지 않는 작품 활동을 지속하였으며, 아내이자 일본 여배우계의 거목 오토와 노부코와의 협업으로 감정의 결을 세밀하게 표현해냈다. 2010년대까지도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며 노년의 열정을 보여주었고, 다카마츠 나루토국제영화제 등 다양한 영화제에서 회고전과 수상으로 그의 영화가 재조명되었다. 그의 영화는 주제적 깊이, 사회적 비판성, 인간에 대한 근본적 탐구로 인해 지금까지도 일본 내외의 많은 감독과 평론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신도 가네토는 100세가 넘는 나이에도 영화에 대한 열정을 멈추지 않았던 인물로, 2012년 5월 29일 향년 100세로 타계하기 전까지도 영화 작업을 이어갔다. 그는 말년에 『일본의 여명』(2011)이라는 장편 영화를 연출하며 현역 최고령 감독으로 기록되었고, 이는 일본의 근대화와 민중의 삶을 돌아보는 서사로, 그의 마지막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생애 동안 그는 칸, 베니스, 베를린 등 세계 3대 영화제를 비롯해 수많은 국내외 영화제에서 수상과 초청을 받았으며, 2002년에는 일본 예술원 회원으로 추대되고, 문화훈장을 수훈하기도 했다. 신도는 또한 일본 시나리오 작가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을 쏟았으며, 일본 영화계의 도덕적 중심이자 양심으로 존경받았다. 그의 사망 이후에도 일본 내 여러 영화제와 박물관, 대학 등에서는 그의 회고전과 특별전이 열렸으며, 그의 작품은 디지털 복원과 아카이빙 과정을 통해 후세에 전승되고 있다. 신도 가네토는 단순한 영화감독을 넘어, 일본 근현대사의 윤리와 고통을 정직하게 그려낸 시대의 예술가로 남아 있다. 그의 작품은 오늘날에도 불평등, 전쟁, 인간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도구로 활용되며, 후대 영화인들에게 끝없는 영감을 주는 존재로 평가받는다.